메뉴 건너뛰기

close

논술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에서 3년 동안 논술을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쳐 오면서 얻은 수업 방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아이들은 거의 다 대학 진학을 한국으로 하는데 재외국민특별전형에 논술 시험을 치뤄야 하기에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는 논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들 중심으로 수업이 바뀌어야

지금껏 우리 교육은 교사 중심의 교육이었습니다. 교사 중심의 수업이란 교사가 알려주는 것을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수업을 말합니다. 이러한 수업에서 아이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아이들의 창의력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수업을 아이들 중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이들 중심의 수업이란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사는 도와주는 역할, 수업에 대한 안내 역할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수업으로 아이들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능력을 밖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현 중심의 수업이라 부릅니다.

어떤 이는 말은 그럴듯하나 수능 시험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렇게 10년 이상을 수업해오면서도 표현 중심 수업 때문에 수능을 망쳤다는 원망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논술이란 아이들의 생각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 중심의 수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논술을 다가서기 위해 논술 교사 모둠을 만들어야 합니다. 논술 시험에 통합적 사고능력을 요구하고 있기에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어, 수학, 과학 사회, 예체능 교사들이 함께 토론을 하며 아이들에게 통합적 사고능력을 길러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학교에는 교과연구부가 있으니 논술 모둠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러한 모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니 사교육이 현재 학교에까지 들어오게 되고 아이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논술에서 통합적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을 기르기 위해 단계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논술에 재미를 붙이면서 통합적인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으로 이끄는 단계, 논술에 깊이 더하기위해 논거 마련을 위한 독서 단계, 그리고 논술 고사를 치르기 위한 실전 문제를 다루는 3단계로 나누어 논술에 다가서야 합니다. 논술이 학교에 정규 교과목으로 도입된다면 첫째 단계는 1학년에서, 둘째 단계는 2학년에서, 셋째 단계는 3학년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단계 : 논술에 재미 붙이기

논술에 재미 붙이면서 통합적인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을 이끌어 주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수업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수업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문장 연결하기 : 앞(왜 논술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나?)에서 예를 들었듯이 모순 된 두 문장을 주고 하나로 엮어보게 하는 것입니다. 모순된 것을 하나로 엮기 위해서 다른 내용을 만들어야 넣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통합적 사고능력과 논리적 서술능력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② 갈래 바꿔 쓰기 : 백석의 '여승'과 같이 이야기가 녹아 있는 시를 가져와 이것을 이야기 글로 바꿔보게 하는 것입니다. 시에는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기에 이 압축된 이야기를 늘이는 과정에서 통합적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이 길러지게 될 것입니다.
③ 가운데 부분 메우기 : 글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주고 가운데 부분은 비워놓고 메우게 하는 것입니다. 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여 앞부분과 뒷부분을 이어야 하기에 통합적인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이 필요합니다.
④ 뒷부분 이어쓰기 : 글을 주고 뒷부분을 쓰게 하는 것입니다. 뒷부분을 만들어 넣기 위해 앞부분의 알맹이를 알아야 하고 그 앞부분과 어긋나지 않는 글을 써야 하므로 통합적인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이 필요합니다.
⑤ 찬반 문제 쓰기 : 우리 사회는 현재 찬반을 놓고 논쟁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찬반에 대한 의견을 모두 제시하고 하나의 관점을 택하거나 제 3반의 의견을 제시하게 하는 것입니다. 찬반 의견을 수렴하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여야 하므로 통합적인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단계 : 논술에 깊이 더하기

논술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논거를 제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논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을 살펴보면 논거를 제대로 들은 것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논거는 지문을 이용하여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높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고 요구하는 분량을 다 채워나가기도 힘듭니다. 지문에서만 가져오게 되면 또한 창의력 있는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논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입니다. 논거의 가장 좋은 텃밭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독서는 논술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독서를 바탕으로 하여 논거를 마련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논술 모둠 교사의 역할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단순히 소개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논제에 맞는 알맹이를 지속적으로 귀띔하여 주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단계 수업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논제] 다음 글은 프랑크 리챠드의 <숙녀인가 호랑이인가>의 줄거리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를 사용하여 이 글의 뒷부분을 완성하여 보시오.

옛날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아주 독특한 재판 풍습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이 왕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큰 사건이면 보통의 절차에 따라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재판은 그 나라의 가장 큰 경기장에서 열리게 됩니다. 피고인을 경기장 안에 혼자 들여보냅니다. 그 경기장에는 2개의 문이 있습니다. 한쪽 문안에는 그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기다리게 하고, 다른 쪽 문 안에는 굶주린 사나운 호랑이가 한 마리 들어있습니다.

물론 피고인은 어느 문안에 누가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왕이 지시할 때 한 쪽 문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만약 그 문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면 그는 무죄로 인정되어 그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며, 호랑이가 나오면 그는 유죄로 인정되어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지금 생각하면 이 재판은 공정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피고인이 문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신의 뜻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여기며 왕과 백성들은 그 재판을 공정한 재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나라에는 아주 멋진 젊은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평민의 신분이었지만 너무나도 멋져 왕의 딸인 공주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와 공주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법은 평민과 왕족인 공주가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공주와 그 젊은이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화를 내었습니다. 공주를 평민에게 시집보낼 수 없었고, 또한 법에도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고 왕의 명령에 따라 보통의 절차 따른 재판이 아닌 큰 경기장에서 열리는 특별한 방식에 의해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자인지 호랑이인지를 선택하는 재판 말입니다. 그 젊은이가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 문을 선택하면 젊은이는 그녀와 결혼을 해야 되고, 사나운 호랑이가 있는 문을 선택하게 되면 곧 바로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로서는 젊은이는 공주와는 절대로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공주는 그 젊은이가 자기에게 재판 당일 눈으로 어느 문을 택할 것인지 물어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니까요. 그래서 공주는 그 젊은이를 사랑한 나머지 재판의 비밀, 즉 어느 문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지, 어느 문에 사나운 호랑이가 있는지를 공주의 힘으로 알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공주로서 지금까지 누렸던 오만과 질투 그리고 소유욕이 공주를 괴롭혔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에 슬픔에 휩싸였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재판이 열리는 날 경기장에는 많은 사람과 왕, 공주를 비롯한 요인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도 경기장 안으로 들여보내졌습니다. 그의 앞에는 두 개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방청석에 있는 공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주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문을 택할지를. 그 때 공주는 두 문 중의 한 쪽문을 가리켜 젊은이에게 눈짓을 하였습니다. 그는 공주가 가리킨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주는 자기가 사랑하는 젊은이가 사나운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할 수 없어서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 쪽을 가리켰을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젊은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어서 호랑이가 있는 쪽을 가리켰을까요? 독자 여러분들도 공주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글은 소설의 뒷부분을 완성하는 것으로 호랑이가 나오느냐 숙녀가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의 알맹이는 사랑과 질투로 엇갈린 공주의 감정입니다. 사랑과 질투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서술하느냐가 알맹이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개인의 감정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이 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를 아이들에게 귀띔을 해 주는 것입니다. 삶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존재 지향의 삶’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유 지향의 삶’입니다. ‘존재 지향의 삶’은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움, 기쁨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며, ‘소유 지향의 삶’은 있는 존재가 내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 될 때도 그 가치에 의해 행복이 달라지므로 소유 지향의 삶은 완전한 행복에는 결코 도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이러한 책을 귀띔하여 주면 아이들은 논거를 들어가며 논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논제에 다가설 수 있는 책을 소개하여 주고 만약 아이들이 그 소개된 많은 책 가운데 한 권 정도는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 읽게 된다면 더 바랄 수 없는 좋은 수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단계 : 논술 실전에 다가서기

대학에서 이미 출제된 논술 문제를 가져와서 앞의 두 단계에서 학습한 것을 밑거름으로 하여 문제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앞의 두 단계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그리 어려움 없이 논술에 다가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논술에서 바로 실전 문제를 주고 그 문제를 푸는 얄팍한 기교를 익히기보다는 통합적 사고능력과 논리적인 서술능력을 기르기 위해 단계를 거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곧 논술은 10-20회의 특강으로 완성될 수는 없는 교과목입니다.

논술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길을 헤매기보다는 논술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을 알고 바람직한 논술의 방향을 찾아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수많은 길 가운데 직접 3년 동안 정규 교과목으로 논술을 가르치면서 얻은 한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