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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산업은 21세기의 화두다. 그 지식산업 한가운데 문화콘텐츠가 자리한다. 문화콘텐츠는 우리 문화원형(역사, 설화, 민담, 문헌자료 등)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으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음반, 디자인, 디지털소스 등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문화콘텐츠를 찾아서>라는 연재기획기사를 통해 문화콘텐츠의 산업적 의미와 전망을 찾아보고자 한다...기자 주


"질라래비훨훨 질라래비훨훨 우리아기 잘 한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신기리 재밑마을 김장수(여ㆍ85) 할머니가 구연한 ‘질라래비’의 한 구절이다. 질라래비는 할머니들이 아기가 막 걸음마를 떼려고 할 때 성장발육을 위해서 불러주던 노래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전래동요를 하나 더 들어보자. 여름철 옛날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놀이 하는 것을 즐겼다. 입술이 새파래지고 몸에 으슬으슬 닭살이 돋을 때까지 한참 놀고 나서는 다음과 같은 ‘물놀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손으로 물기를 털어내고 오른쪽 귀와 왼쪽 귀를 번갈아 기울이며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면서 말이다.

▲ 자연의 소리인 매미 울음 소리. 구전설화에 등장하는 동물과 자연물의 소리는 아침을 열어주는 닭울음소리, 개가 짖는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눈, 낙엽 소리 등 다양하다.
ⓒ 디지털코리아루트
빼빼 말러라 꼬득 꼬득 말러라
빼빼 말러라 명태같이 말러라
한박귀야 쪽박귀야
네 귀에 물빼줄게 내 귀에 물빼다고


이처럼 전통 속에 숨어 있던 우리의 소리가 디지털콘텐츠로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디지털코리아루트’가 개발한 ‘한국의 소리은행’이 그것인데 이는 우리 고유의 소리와 현대의 전자음으로 재생 불가능한 전통의 소리 등을 선별해 모두 5600편의 디지털콘텐츠로 구성됐다.

소리은행은 크게 ①전통문화에 등장하는 소리(절구소리, 다듬이 소리) ②구전민요에 등장하는 소리(논 매는소리, 아라리, 상여소리) ③설화에 등장하는 동물과 자연의 소리(바람소리, 달팽이기어가는소리, 소울음소리) ④근래소리와 기타소리(엿장수가위질소리, 월드컵응원소리)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의 소리은행, 독특한 소리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반영한 소리 망라”

김이연 소리은행팀장은 “한국의 소리은행 콘텐츠는 (소리의) 산업별 활용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재미있고 독특한 소재의 소리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소리를 대상으로 선별해 한국 전통문화와 근대소리를 총망라 한 것”이라고 콘텐츠를 소개했다.

콘텐츠개발을 진행한 임직원들은 개발책임자인 사장 김진순 박사를 비롯해 모두 대학과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한 현장 답사가들이다. 디지털코리아루트는 이들과 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 모여 만든 회사다. 이들은 소리은행 개발을 위해 1989년부터 아날로그 테이프와 DAT, 6mm 디지털카메라로 자료를 수집하며 소리와 더불어 15년이 넘게 살아왔다.

▲ 물펌프 소리. 예전 시골에 가면 물 한바가지 퍼서 이 수동 물펌프에 넣고 손잡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 많은 물들이 콸콸 쏟아졌었다. 매미소리 울릴 때쯤이면 그 시절의 시원했던 물이 간절해진다. 이미지를 곁들여 소리의 이해를 도왔다.
ⓒ 디지털코리아루트
현재 소리은행 콘텐츠는 듣는 소리 5000편과 보는 소리 600편으로 구성돼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듣는 소리와 보는 소리는 어떻게 구분한 것일까?

김 팀장은 “‘소리’하면 듣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전통의 소리 등은 듣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무척 많다”면서 “이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기억에서 소리가 지워졌기 때문인데 ‘보는 소리(동영상+텍스트)’는 HD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을 함께 제공해 이해를 도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팀장은 “기존 전통의 소리 하면 국악 등이 대표되는데 국악은 전문 음악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포함할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은 그다지 넓지 못하다”며 “게다가 전통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대한 멀티미디어 기록은 사람의 목소리 외에 거의 전무한데 ‘듣는 소리(음향+이미지+텍스트)’는 다양한 소리에 대한 해설과 관련 이미지를 함께 제공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콘텐츠 개발을 위해 전통 속에서 찾은 자료는 신뢰성을 높이는 철저한 감수가 생명이다. 특히 ‘소리’라는 이색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한국의 소리은행은 더욱 그렇다.

김 팀장은 "소리은행은 전공 박사, 석사급으로 구성된 담당자들이 콘텐츠기획과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자료를 검증하는 단계가 불필요할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문화원형복원이라는 엄격성을 기하기 위해 김인회(전 연세대), 임재해(안동대 민속학과), 황루시(관동대 미디어국문학과), 전신재(한림대) 등 교수님들의 자문을 받았다”며 자료의 신뢰도가 매우 높음을 강조했다.

김 팀장은 이어 “민속문화, 구전민요, 무가 등과 관련된 소리자료 및 콘텐츠의 감수는 개발팀의 전문가와 별도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의 도움을 받아 엄격하게 선별, 진행했다”며 “콘텐츠는 문화 산업계의 전문가들이 검증했고, 소리의 녹음과 촬영은 전통문화촬영 경력이 10년 이상 된 방송국 출신 카메라감독이 총괄했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 TV spot, 벨소리, 컬러링, 효과음, 전통문화 해외 홍보 등 활용

▲ 정선 지방의 물레방아 소리. 생활을 하다 보면 전통문화에 담긴 소리는 수없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만들기 위해서 아궁이에 불도 지펴야 하고, 쌀도 씻어야 하고, 농사일도 하고, 마당을 쓸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 전통의 소리가 담겨 있다.
ⓒ 디지털코리아루트
소리은행 콘텐츠는 여러 산업에 두루 활용이 가능하다. 방송영상의 다큐멘터리와 TV spot, 기업이미지 광고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휴대전화 벨소리나 컬러링 등 모바일과 DMB 콘텐츠로도 활용이 가능하고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에 다양한 효과음과 캐릭터 소재로도 쓰인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교육자료와 음반이나 DVD를 통해 일반인과 해외 사람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활용되는 등 쓰임새가 광범위하다.

김 팀장은 “라이선싱 사업을 통해 현재 소리은행 음원들을 음악 CD로 만들고 있는데 최근 웰빙 바람에 이어 마음 편안한 공간인 산사의 소리들을 모은 '산사에서의 고요한 명상'은 그간 출반된 7종류 중 대표적인 CD”라며 “이런 음원은 모바일 서비스로 전환되어 KTF Fimm을 통해 서비스 되고 있고, 온라인 음원 회사와 콘텐츠 공급 제휴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김 팀장은 이어 “지상파 방송사의 spot으로 현재 강원민방에서는 그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강원도의 민요를 방송하고 있다”면서 “애니메이션 업체와 함께 전래 육아와 동요를 테마로 하는 작품을 기획하고 현재 제작 진행 중이며 소리은행의 산업적 활용도를 계속 높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리은행이 콘텐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삶이다. 그래서 재연이나 연출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행해지는 소리를 녹취하는데,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전통적이지 않음에 콘텐츠를 추가로 개발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민요가 있는데도 이제는 이를 불러 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끝으로 “은행은 기존 자본만을 유지해서는 발전이 없다”고 전제한 뒤 “5600편 외에 업데이트할 양이 그만큼 있고, 또 아직도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우리만큼의 기술을 가지지 못한 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소리 또한 미래를 위해 모을 필요가 있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김 팀장은 “그런 점에서 정부차원의 지원이 모자란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전민요 제주밭매는소리. 구전민요나 굿의 소리에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의식을 행할 때 부르는 의식요,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 옛날 어린이들이 불렀던 동요, 마을이나 개인들이 행하는 무속 굿의 소리 등이 있다. 점차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우리의 소리다.
ⓒ 디지털코리아루트
소리에도 국적과 전통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크고 작은 소리로 넘쳐난다. 산사의 풍경처럼 정신을 맑게 하는 울림이 있는가 하면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재미난 휴대전화 벨소리도 있고 때론 자동차 경적소리처럼 기분을 언짢게 하는 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듬이소리와 상여소리처럼 잊혀 가는 것들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디지털로 복원, 개발하면 잊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의 소리를 차곡차곡 모아놓은 소리은행이 의미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그 동안 잘 몰랐고 인식하지도 못했지만 소리에는 국적과 전통이 깃들어 있다. 좋은 전통은 잘 지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소리’가 문화콘텐츠로써 여러 분야에서 전통을 살려내고 사업적으로도 활용도가 크다면 하나라도 더 발굴하고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리은행의 자산이 계속 증가하길 기대해 본다.

▲ 한국의 소리은행 콘텐츠 구성 요약표. 우리 고유의 소리와 현대의 전자음으로 재생 불가능한 전통의 소리 등을 선별해 모두 5600편의 디지털콘텐츠로 구성됐다.
ⓒ 디지털코리아루트

덧붙이는 글 | '디지털코리아루트'의 '한국의 소리은행' 콘텐츠 자료 열람 
http://www.culturecontent.com -> 문화원형관 -> 소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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