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싱그러운 초록색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가 빽빽해지고 잿빛이던 잔디밭은 푸르르며 색색의 꽃이 화단을 수놓고 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마냥 화창한 날씨 같지만 햇빛이 쨍쨍한 것이 봄 같지는 않다. 어느 날엔 여름같이 푹푹 찌다가도 다음날은 찬 바람이 쌩쌩 불어서 겉옷을 입어도 쌀쌀하다. 날씨가 이상하다.

설레는 첫 대학 생활의 시작 

6년간의 중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올해 드디어 신입생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동시에 6년 동안 입고 있던 갑갑하고 단조로운 교복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입은 사복이라곤 무지 반소매 티 세 벌과 반바지 두 벌, 후드티 두 벌과 긴바지 네 벌이 다였다. 거의 다 중학생 때부터 입어 온 후줄근한 체육복이었다.

대학교 입학 축하 선물로 받은 용돈들은 모두 옷값이 되었다. 수많은 쇼핑 앱과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온갖 스타일을 찾아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빼며 3월을 기다렸다. 이제 와 생각하지만, 이때 옷을 샀으면 안 됐다. 봄에 입으려고 산 옷인데, 봄에 입기에는 날이 너무 더웠다.

많은 대학이 그러하듯, 우리 학교 역시 큰 부지 면적을 자랑한다. 한 건물 내에서 생활하는 고등학교와 다르게 대학교는 수업마다 건물이 다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수업 사이 사이에 학교 끝에서 끝으로 빠르게 가로지르기도 한다. 해가 쨍쨍할 때 밖을 걸어 다니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 4월은 정말 뜨거웠다. 서울의 최고 기온이 4월 13일에는 27도, 28일에는 28.9도까지 올라갔단다. 서울의 4월 평균 기온은 16.3도로 관측 사상 처음으로 16도를 넘어섰다. 강원도의 정선과 영월은 14일 32.2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요즘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갈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여름에 캠퍼스 어떻게 걸어 다니지?"

벌써 여름이 두려워진다.     

들끓는 지구 
 
봄인데 햇빛이 아주 쨍쨍하다
 봄인데 햇빛이 아주 쨍쨍하다
ⓒ 최지우

관련사진보기


2023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UN 사무총장 구테흐스의 "warming은 끝났다, Global Boiling의 시대가 왔다."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2023년보다도 더 뜨거운 역대급 더위가 몰려올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들려온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벌써 폭염이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온다. 필리핀의 마닐라는 4월 말 38.8도, 체감 온도는 50도에 달했다. 사람들은 양산을 들고, 햇빛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긴 옷으로 단단히 채비하고 밖을 나섰고, 전국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필리핀뿐만 아니다.

태국, 베트남, 인도 등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기록적 폭염이 시작되며 몇몇 지역은 40도를 뛰어넘었고 갖가지 폭염 피해와 온열 환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엘니뇨로 인해 폭염이 더 심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올해 폭염을 피해가긴 힘들 것이다.

이상한 지구, 나의 꿈
 

이런 이상한 지구 덕분에 나의 꿈이 생겼다면 좀 이상할까.

나의 지난 고등학교 3년은 여타 다른 학생들처럼 오로지 대학을 위한 삶이었지만,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난 유난인 아이였다. 소위 말하는 대학 라인을 엄청나게 높이거나 낮추면서 6개의 원서를 '에너지 공학과'로 써버렸다.

'에너지'를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갖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시작은 소박했다. 중학교 때 환경 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며 인원을 채워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별 생각 없이 들어준 것에서 시작했다. 동아리 시간에 접한 플라스틱 문제, 지구 온난화 문제 등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쯤부터 개인적으로도 환경과 관련된 기사들을 구독하고 종종 찾아보았다.

환경 중에서도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해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그 해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전력난을 겪었다. 그때 알았다. 에너지의 위험성과 중요성을. 쓰레기 문제에만 국한되었던 시야가 넓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가 쓰이고... 세상은 에너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엄청난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것도.

2022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에 전 세계적으로 폭염이 발생했다. 서유럽, 미국, 파키스탄,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폭염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기후 변화,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온실가스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방법인 재생 에너지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 다르게 햇빛, 바람, 파도 등만 있다면 전기를 생산해낼 수 있다. 태양광 발전은 광전효과, 바람이나 파도 등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 등의 재생 에너지는 출력이 균일하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에 따라 에너지 저장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다.

에너지 저장 장치를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관리함으로써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전력 인프라와 안정성 문제 등으로 완전한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았었고, 신재생 에너지와 함께 더 나은 에너지 저장 해결책을 연구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꿈이 생겼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에너지 분야와 기후 위기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에너지 공학과에 왔다.

   
재생 에너지
 재생 에너지
ⓒ 게티이미지뱅크

관련사진보기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 재생 에너지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면 종종 들려오는 말이 있다.

"어차피 틀렸다."
"재생에너지 연구한다고 안 바뀐다."
"재생 에너지도 문제 많던데?"


그럴 때, 비록 전문적이지 못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고작 이제야 대학생 1학년이 되어 역시나 에너지 공학도에 한 발짝 다가가는 중일 뿐인 나는 답한다.

"뭐라도 해봐야지."

회의적인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구의 온도가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그 속도를 늦추도록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노력해보고, 뭔가 잘못되면, 다시 고쳐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상이 망하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는 건 그리 현명한 태도가 아닌 것 같다. 지금 당장 우리는 뭔가라도 시도할 수 있는데 말이다. 대중교통을 애용하고,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고, 쓰레기를 덜 버리고, 뭐라도 할 수 있으니, 아무리 작은 행동일지언정, 효과가 없을 것 같을지언정, 시작해 보자.

더 뜨거워질 봄을 막기 위해서. 올해 입지 못한 봄옷을 내후년에는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

태그:#기후위기, #에너지, #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