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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시작된 전공의(병원수련의사) 집단 진료거부로 인해 환자가 입원해야 할 병동은 연이어 폐쇄되고 있고, 환자와 노동자들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병원에서도 2박3일 입원하여 항암제 치료를 받아왔던 환자가, 하루 만에 퇴원을 당해 집에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수술을 앞 둔 환자들은 수술이 연기되고 있다.

이 틈을 타고, 병원들은 아산병원을 시작으로 서울대병원까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노동자들에게 무급휴가를 강요하고 임금 반납까지 얘기되고 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교수들까지 '주 1회 전원 휴진'을 예고하고 있어 의료대란 사태는 점점 심해질 것 같다. 이번 사태의 시작인 '의사 증원' 문제는 당연히 증원되어야 마땅하지만, 정부의 증원 정책 시행 방식은 '개문발차' 식의 정책이라는 혹평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책 없는 강대강 대치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공의 1,300여명이 참여한 '정책피해 전공의,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 집단고소 기자회견’이 열렸다.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공의 1,300여명이 참여한 '정책피해 전공의,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 집단고소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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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사 증원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정부와 의사집단 간의 강한 대치가 계속 되는 중에 병원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공백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증가되는 2000명에 대한 배치 기준조차 없는 문제와 시장에 맡겨져 조절·통제 받지 않는 의료공급 구조 문제 등 불편한 진실은 감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불편한 진실의 핵심은 바로 부실한 공공의료에 관한 것으로, 정부와 의사집단 그리고 언론도 쉬쉬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없이, 의사만 늘이면 지역·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돈벌이 의료 쏠림만 더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

작금의 전공의 집단 진료 거부 사태에서 보듯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큰 병원들이 단지 수련의가 수련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병원이 마비되는 현실은, 그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는 전공의가 10% 정도인데, 한국의 대학병원은 40% 이상이다. 대학병원들이 이렇게 전공의 의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수련을 받아야 할 전공의가 없어지자 병원이 마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병원자본이 이들의 노동에 의존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이들의 노동력을 얼마나 착취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공의들 또한 평상시에는 장시간 노동과 노동 강도를 낮춰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는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에게 더 이상 장시간 노동을 시켜서는 안 된다. 현재, 대다수 전공의들의 수련조건과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법적인 근로기준보다 2배가 넘는 주 80시간 노동이 허용되고, 이틀~사흘 연속 (밤샘) 당직을 선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도 위험하다.

수련생이란 미명하에 전임 의사 임금의 30~40% 정도만 받으면서 일은 근로기준법의 두 배로 해야 하는 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전공의들 또한 수련과정을 거친 후에 원장을 하게 될지 아니면 임금을 받는 봉직의가 될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사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그런 생각을 넘어서서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많은 국민들이 필수의료 부족과 의료공백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심지어는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의료인들과 의료기관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만약 전공의들이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에도 의사들이 있어야 한다',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공공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요구를 걸고 파업을 했다면 국민 밉상이 아니라, 거꾸로 국민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가짜 의료개혁과 진짜 의료개혁
 
시민들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시민들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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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현장은 늘 인력이 부족하고 아수라장이다. 환자의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간호사 등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지만, 병원은 수익을 내기 위해 인력을 최대한 줄이기 때문이다. 병동간호사들은 법정 휴일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휴일을 쌓아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병실을 폐쇄하고 환자가 줄어들자 병원은 제대로 된 간호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경영상 부담을 이유로 근무 간호사를 줄이고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있다. 말이 비상경영이지 결국은 '무급 휴가'를 강요하거나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시간과 삶은 고무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하는 병원자본의 후안무치이고 불법 부당한 짓이다.

한편으로 정부는 의료대란에 대처하겠다고 하면서 전공의 업무를 대체할 진료지원(PA) 간호사 합법화에 나서겠다고 하였으나, 정부는 PA를 공식 직역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어떤 때는 정부가 나서서 불법의료이기 때문에 엄벌을 하겠다고 하다가, 지금은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불편한 진실로써, 사실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의사의 일을, 인건비가 덜 드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충 넘겨왔던 것이 본질이다. 간호사들은 책임과 권한, 보상도 없이 의사의 일을 넘겨받게 되어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고 늘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는 PA 시범사업이라고 발표했지만 교육훈련, 책임, 권한, 보상 내용은 제대로 없다. 최근에는 전공의가 떠난 자리에 신규간호사까지 의사업무를 대체하는 PA로 둔갑시키고 있어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중요한 건 모든 국민이 돈이 없어도 어떤 지역에 살더라도 필요한 의료를 제 때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야 선진국이고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다. 그 방법이 바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가 왜 무너졌는지 와 그것을 책임질 의사가 왜 없었느냐에 대한 원인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공공의료를 성장시키지 않았고, 의료를 시장에 내맡긴 책임이 정부에 있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30%에서 점점 줄어서 지금은 5% 밖에 없고, 공공병원이 없거나 분만시설이 없는 시·군·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 확대 외에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의료 민영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환자 정보를 민간의료보험사에 넘기고 있고,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때, 80% 이상의 코로나 환자를 책임졌던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은 적자상태로 고사 직전인데 배정된 예산을 대부분 삭감하면서, 민간대형병원에는 온갖 구실을 붙여서 매년 수천 억 원의 지원을 하고 있다. 노동자시민들이 20년 넘게 싸워 제주에서 영리병원을 막아내자, 이제는 강원도에서 열어주겠다고 한다.

이런 윤석열 정부의 가짜 의료개혁에 속아서는 안 된다.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지역공공의대와 공공병원을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증원된 의사가 지역에서 돈보다 환자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며 지역민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런 의사를 사랑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현정희씨는 전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전 공공운수노조위원장)입니다.


태그:#의료대란, #의대증원,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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