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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경기 화성시 예비후보로 나온 분 중 '동탄 호랑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나오신 분이 있었다. 이번에 할 이야기는 동탄의 호랑이라고 말씀하셨던 그분 덕분에 떠오른 '동탄 호랑이와 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분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칼럼거리를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화성에 정착한 이후 민속과 구비문학 분야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동탄에서 시민강좌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시민들이 많으셔서인지 수업태도도 적극적이시고 질문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탄의 구비문학을 이야기 하고자 하면 유명한 효자 박장철 선생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다만 효자이야기는 동탄의 특별함을 담기가 조금 어렵다. 아시다시피 화성시에는 워낙 역사에 기록된 효자가 많다. 효심으로 융릉을 조성한 정조대왕이나 삼강행실도에 나오는 최루백처럼 너무나도 유명한 효자가 많기에 효자 이야기로 특별해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역발상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영화도 스핀오프라고 하여 악당 캐릭터나 조연 캐릭터를 주역으로 다시 만들어 조명하기도 하니 이야기 속에서 박장철을 도와준 동탄의 호랑이산신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이야기를 소개해야 하니 간략한 내용을 알아보자.

박장철 선생은 1780년부터 1853년까지 동탄지역에서 이름난 효자였던 실존인물이며 1885년 고종이 효자문을 내릴 정도로 유명했었다. 역사가 아닌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효자 박장철
 
 박장철 효자각 정면 사진 ⓒ김명수 
  박장철 효자각 정면 사진 ⓒ김명수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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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부터 유명했던 효자 박장철의 아버지가 병환에 들었다. 병에 좋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아도 차도가 없던 차에 송이버섯을 드시면 병이 낫는 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장철은 송이버섯을 구하기 위해 읍내로 나갔다. 송이를 구한 박장철이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주변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하룻밤 묵어가기를 권했지만 위중한 아버지가 걱정된 나머지 길을 나선 박장철은 험한 길에 비까지 만나 어두운 숲을 헤매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염불과 목탁소리, 그리고 지팡이를 짚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한 도사가 있는 것이었다. 

박장철의 사정을 들은 도사는 무서움도 덜 겸 동행하자고 했다. 신기하게도 도사가 앞에 서니 비가 걷히고 길도 환해져서 집에 빠르게 도착하게 되었다. 은혜를 입은 박장철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시라 권하니 도사는 뒤로 펄쩍 재주를 넘었고 큰 호랑이로 변했다. 자신의 밤길을 산신이 지켜준 것이라 생각한 박장철은 키우던 개를 잡아 대접하였으나 다음날 살펴보니 개는 그대로였다. 송이를 드신 박장철의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였고 이후 도사가 호랑이로 변해 사라진 곳을 "대호밭"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제 동탄의 호랑이 산신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의 구비문학 속 호랑이를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유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는 신격화된 산신이나 영물의 모습, 둘째로는 사람이나 동물을 해치는 사나운 맹수이자 폭군의 모습, 셋째는 인간과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거나 보은을 하는 원조자 적 모습, 넷째는 욕심이 많으나 우둔하여 힘이 약한 존재에게 속아 골탕을 먹는 희화화된 모습이다. 

유형을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익숙한 동화나 동요가 기억이 나시는 분이 많으실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할 박장철 효자 이야기 속 호랑이는 첫 번째 유형인 신적인 존재이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고 어둠을 밝히고 비를 그치게 하는 신통력이 있다. 이러한 신적인 능력으로 박장철의 효행을 돕는 것이기에 원조자로서의 산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박장철효자문에 기록된 효자문의 유래 ⓒ김명수 
 박장철효자문에 기록된 효자문의 유래 ⓒ김명수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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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탄의 호랑이 산신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조금은 작아 보이는 곳에 있다. 바로 박장철이 대접한 개가 다음 날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눈에서 희미한 안광이 보일 때가 있다. 호랑이가 있다면 밤길을 밝히는 안광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때마침 비가 그친 것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을 다시 살린 것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신도의 충성을 시험하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요구하는 이야기는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이야기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 구약의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25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태워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려 하자 다급히 나타난 천사가 아브라함을 말리고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흡족해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한국의 구비문학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동자삼 이야기가 있다. 자식을 삶아서 부모님께 드려야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효자가 솥에다 자식을 넣고 삶았는데 다음날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말없이 외박하고 돌아왔다며 사과를 했고 아들을 삶은 솥에는 동자삼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동탄의 호랑이 산신이 개를 대접받았던 것도 이런 이야기와 비슷한 결을 공유하고 있다.

동탄의 호랑이
 
박장철 효자각의 전경 ⓒ김명수 
 박장철 효자각의 전경 ⓒ김명수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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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의 호랑이 산신에게 볼 수 있는 특별함은 믿음에 대한 시험보다는 생명의 존중에 있다. 이야기의 배경인 정조대왕의 시대는 동물권 개념이 없는 시기다. 당연히 음식이자 고기였을 강아지를 되살리는 것은 작지만 놀라운 지점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를 위해 희생한 효자들의 이야기에는 효를 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고 어떤 이야기들은 폭력적인 지점으로 향한다. 앞서 예를 든 동자삼의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효를 위해 자식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안도감으로 변하면서 극적 효과를 낸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전하며 얻고자 하는 교훈은 효를 위해 하는 희생은 결국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이겠지만 더 큰 용기와 과시가 필요한 효와 열이 결국 강요된 효자와 열녀를 만들어낸다. 최근 어르신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의 콘서트의 표를 구하는 것이 피가 터지는 표 구매라는 의미로 피케팅으로 불리고 자랑삼아 100만 원이 넘는 암표를 자식들이 사줬다는 이야기가 도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자신이 받은 효행을 자랑하는 문화가 여전한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효자 박장철을 지켜준 호랑이 산신은 박장철의 믿음을 시험하지도 그에 맞는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아버지를 위하는 효심을 지켜주는 데에 집중하는 신이다. 시험을 통해 믿음을 확인받는 폭력적인 과정 없이 선한 일을 행한 자를 도와주는 신. 참 멋지지 않은가?

이 이야기 외에도 박장철 선생의 효심은 슈퍼파워와 같다. 이웃집에서 난 불이 부모 봉양을 위해 모아둔 쌀을 태우자 탄식을 했더니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도 하고 흉년에 전염병이 겹친 해에는 사재를 털고 직접 병자를 찾아다니며 약을 먹여 마을 주민들을 구호했다고 한다. 그 정도 효자이니 나라에서도 기념하고 호랑이 산신도 박장철 선생을 살뜰히 챙겼을 것이다. 
 
박순원 옹이 대호밭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김명수 
 박순원 옹이 대호밭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김명수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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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이 호랑이로 변했다고 하는 대호밭이라는 곳은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칼럼을 쓰기 전에 박장철 선생에게 인사나 할 요량으로 방문했던 날 장지동이 고향이시고 여전히 그곳에 살고계신 어르신을 만나 대호밭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막연히 동탄은 개발이 완료된 곳이고 민속조사가 필요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아직 화성은 민속과 이야기 자원이 넘치는 곳이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오다니 칼럼을 맡겨주신 화성시민신문에 감사하면서도 어르신들이 살아계실 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건강한 부담도 조금 생겼다.

이제 동탄에는 호랑이가 살만한 산들이 별로 없다. 박장철 선생의 후손이신 박순원(1934) 옹께서 알려주신 대호밭에는 양옥집들이 들어서 있다. 예전 동탄에 살았던 사람들은 숲이었던 대호밭을 증거로 호랑이 산신의 전설을 기억했겠지만, 지금은 그 증거가 사라졌다. 하지만 장지동에 있는 박장철 효자문에 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아무 대가 없이 효자 박장철을 도왔던 동탄의 호랑이 산신, 동탄의 집사들과 함께 산책하고 있는 수많은 견공들도 따뜻하게 지켜주는 인자한 산신, 생명을 사랑했던 호랑이 산신을 동탄에 사는 시민들이 많이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김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연구원
 김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연구원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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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성, #동탄 호랑이산신, #효자 박정철,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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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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