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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친 박 교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친 박 교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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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는 2013년 출간한 도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피해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술했다. 아래는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문 중 '공소 사실의 요지'에 기재돼 있는 것이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의 내용이 군인을 상대하는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생활을 위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의 동원 과정에서 일본군의 강제 연행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군인 개인의 일탈에 의한 것이어서 공적으로 일본군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학문의 자유로 인정받은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는 이 책에 대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대척점에 있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 편에 서서 쓴 책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은 2014년 6월 박유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박 교수가 우리를 매춘부나 일본군 협력자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박유하는 허위 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학문적 표현은 옳은 것뿐만 아니라 틀린 것도 보호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이 명예훼손으로 본 35곳 표현 가운데 11곳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게 맞다며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23년 10월 26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이 사건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2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김재호)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환송 전 당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표현은 학문적 의견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를 명예훼손 사실적시로 판단하기 어렵고, 공소사실 무죄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없기에 검사의 주장은 모두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결론이 먼저일까? 법적 근거가 먼저일까?

나는 법학과 출신이다.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법학이란 학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돈벌이를 하고 살지만 이것 하나는 안다. '법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면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법조문이나 결론의 학문적 근거는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안처럼 1심 무죄가 2심 유죄가 되고, 대법원에서 다시 무죄를 만드는 사람은 판사들이다. 대법원 최종 판단이 불가역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반드시 그 판단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에 기초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 덕분이다.

헌법 제27조에 나와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특정 사건과 인물에게 적용되면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유죄간주의 원칙으로 변용돼 무죄추정을 받는 국민들을 괴롭힌다. 이런 검찰의 행태도 하나의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법조문과 학문적 근거를 끼워 맞추는 식과 다름없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판단과는 다르게 의뢰인에 따라서 결론을 정해서 거기에 맞는 증거와 논리를 개발하여 돈을 버는 이들도 있다. 

법은 그렇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말하면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체계를 무시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법은 일정한 질서와 체계가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될 때가 많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거짓으로 만들고, 피해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왜곡해도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 표명으로 봐야 하며 사실적 적시가 아니므로 명예훼손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피고인 박유하의 변호인의 주장이 아니라 대법원 판사님들의 판단이다.

학교 때도 거의 읽어보지 않았던 대법원 판결문과 파기환송심의 판결사유를 꼼꼼히 읽어봤다. 이 사건은 2017년에 대법원에 올라갔다. 6년이라는 시간을 끌어오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뒤늦게 판단한 것이다. 정권의 눈치를 봤다고 평가하면 대법원은 발끈하겠지만, 과거 정부에 비해 일본과의 유연하고 저자세에 가까운 외교관계를 펼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원은 이 사안을 상대적으로 발빠르게 처리했다.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이 사건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면서 무죄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대법원은 피고인 박유하의 발언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 제22조 제1항의 학문의 자유에 대한 설명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며 해당 발언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일 뿐이라고,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우리 사회의 나태함이 낳은 괴물"이 학문적 자유라고?

매춘행위의 자발성, 위안부로서 느끼는 자긍심 등은 피고인 박유하의 의견이며 위안부와 일본군 동지적 관계에 있다는 판단은 학자로서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과 증언을 애써 외면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을 오롯이 피고인 박유하의 학문적 자유라고 대법원은 인정한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에 대해 나눔의 집은 이렇게 비판했다.

"박유하는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누린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탐구하지 않은 우리 사회 나태함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비단 우리 사회의 나태함뿐일까. 이 문장은 정치권과 사법부, 언론 등에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영화에서 진주댁은 좀 더 일찍 함께하지 못한 옥분의 지난 날들을 가슴 아파했다. 대부분의 일반시만들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뒤늦게 알고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우리 이웃의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영화에서 진주댁은 좀 더 일찍 함께하지 못한 옥분의 지난 날들을 가슴 아파했다. 대부분의 일반시만들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뒤늦게 알고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우리 이웃의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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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말하는 '연대'

이 글을 쓰느라 여러 가지 정보와 판결문을 검색을 했더니 내 마음의 혼란과 분노를 인터넷 알고리즘은 정확하게 파악했나 보다. 유튜브 숏츠로 짧은 영상을 연달아 보여준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위안부 할머니였던 옥분(나문희 분)과 진주댁(염혜란 분)의 눈물나는 영상이 바로 그것이다.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였다. 옥분의 어머니도 옥분을 부끄러워했으며, 옥분의 남동생 또한 옥분과의 인연을 애써 지우고 미국에서 우리말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런 과거를 꽁꽁 숨긴 채 살아왔던 옥분은 언젠가 자신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하지만 자신보다 먼저 영어를 배워 세상에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던 친구가 병들자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사실을 밝힌 것은 옥분 자신의 결정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린 이후의 일상은 왠지 달라진 것만 같았다. 평생을 함께했던 시장 사람들의 눈길도 예전 같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옥분의 마음은 떨렸다. 특히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진주댁의 차가운 눈길이 못내 슬프고 서운했다. 자신을 피하는 진주댁을 옥분은 쫓아간다.

"나같이 험한 과거를 가진 년 하고는 친구를 하고 싶지 않다 이거여?"
"그기 무슨..."
"길에서 마주쳐도 못 본 척하고… 어?"


옥분의 눈길을 피하던 진주댁은 울면서 외친다.

"서운해서 그랬어요. 서운해서. 몸살이 날 정도로 서운해서! ... 제가 요 며칠 형님이 얼마나 괘씸했는 줄 알아요? 형님하고 내하고, 지낸 세월이 얼만교. 아니 근데 어떻게... 내한테는... 요만큼도 얘기를 안 하고...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으마... 내가 어떻게든, 뭐라도 도왔을 거 아닌교. 제가 그래 못 미더웠던교. 제가 형님 속도 못 알아줄 만큼 그런 얼뜨기로 보였등교?"
"미안햐… 정말로 미안혀!"
"진즉에 이야기하지. 그 긴 세월을… 혼자… 얼마나 힘드셨을꼬…"


옥분과 진주댁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랬다. 진주댁은 좀 더 일찍 함께하지 못한 옥분의 지난 날들을 가슴 아파했다. 대부분의 일반시만들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뒤늦게 알고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우리 이웃의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 쪽에서는 이런 사회적 연대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위안부 할머니와 시민들과의 연대를 끊으려 하고, 제주4.3과 시민들과 연대를 끊으려 하고, 광주5.18과 시민들과의 연대를 끊으려 하고, 세월호와 시민들과의 연대를 끊으려 하고, 이태원참사와 시민들과의 연대를 끊으려 하는 행위 말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태그:#아이캔스피크, #위안부, #박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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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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