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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라는 단어가 범람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부유하는 단어들을 남발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단어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는 진심을 다해 사유하고 성찰하지는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지우기 힘들다. '나는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유라는 가치가 제일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삶을 통해 그것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유를 말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행복할 권리를 서슴없이 빼앗는다거나, 자신이 표현할 자유만이 제일 중요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종종 이런 이들이 무소불위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홍세화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관련 기사: "겸손한 어른 되겠습니다"… '전사' 홍세화의 마지막, 엉엉 운 시민들 https://omn.kr/28efl ).

'거친 글' 통해 보는 홍세화의 자유론 
 
홍세화의 <결:거칢에 대하여>(2020) 책표지.
 홍세화의 <결:거칢에 대하여>(2020) 책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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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의 지지자임에도, 부끄럽게도 홍 선생에 대해 잘은 몰랐다. 그가 노동당 고문이고, 프랑스로 망명한 적이 있으며, 여러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현장에 늘 있었다는 것 정도? 지난 2020년에 출간된 그의 책 <결 : 거칢에 대하여>를 펼쳤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1부('자유, 자유인')를 통틀어 많은 사상가들을 호출하며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홍 선생은 "자유를 '내 멋대로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명확했던 모양이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성숙시키고 아름답게 가꾸는 데서 오는 내면적 충만감과 즐거움, 그런 충만감과 즐거움을 누리는 나와 네가 맺는 아름다운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략)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짓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고쳐 짓거나 새로 지을 게 없는,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조지 레이코프의 말, "자유를 빼앗기는 것도 위험한 말이지만, 자유 개념을 빼앗기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을 인용하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타계 4일 전 진행된 <한겨레> 인터뷰에서 '자유를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대통령이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게 참 묘하다'라고 답했다. 자유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는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더 골몰인 대통령의 모습은, 그의 말대로 정말 '묘한' 광경이긴 하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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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돈에 예속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볼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일까? 홍세화의 자유론에서 계속 언급되는, '(돈과 권력 등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라는 표현에 직면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대부분의 사람 마음속에서는 '맞아요, 진정한 자유인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와 '그래도 돈이 없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큰일 나는데요, 너무 이상적이시네요!'가 부딪칠 것 같다. 
 
"우리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자유의 가치를 외면하거나 등한시해왔고 자유인의 의미를 치열하게 붙잡지 않았다는 점을.어쩌면 자유 개념을 빼앗긴 탓도 있겠지만, 자유의 가치와 자유인을 전면에 앞세우기가 버거워 민주화라는 방패 뒤에 숨었던 건 아닐까.

민주공화국은 자유로운 시민들을 주체로 하지 않을 때 빈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화를 통해 자유로운 시민을 형성한다는,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한 것인지 모른다."

그의 말은 어쩌면 이상적인 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자유인이 될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준엄한 일침. 그래서 이 대목까지 오게 되면, 죽비 한 대를 맞은 기분이다.

지금, 다시 홍세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성찰하지 않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마치 자기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한국 사회. 2002년 한국으로 귀국한 '파리의 택시 운전사'가 20여 년간 그가 바라본 광경의 본질이다.

모두가 무엇이 문제인지 떠들기는 좋아하지만, 내 앞의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기꺼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의 예측대로, '한국 사회,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말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그가 떠난 지금 다시 펼쳐 보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책의 이름대로 자유라는 핵심 가치의 '결'을 따라 항해하기 때문이다. 홍 선생은 자유에 대해 성찰하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가 관찰한 '진정한 자유가 결여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거쳐, 난민이라는 자신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렌즈로 하여 국내의 현실정치와 세계를 세세하게 살펴본다.

이 항해를 함께 하고 있으면, 서문에서 그가 자신의 글을 두고 '섬세하지 못한', '거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의아해질 따름이다. 그의 사유는 충분히 섬세하다. 또 그 섬세한 사유에 걸맞은 실천을 삶을 통해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독자적 진보정당이 사라진 총선 결과에 대해 소회를 묻는 질문에 진보정치에 삶을 바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렵잖아요. 예견됐던 일이고. 크게 실망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이 책을 읽기 전에 인터뷰를 먼저 접했던 입장에서, 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이기에 나에게는 이 부분이 못내 섭섭한 답변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홍세화 시민사회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홍세화 시민사회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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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이것도 예견했던 걸까? 이 길이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걷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니, 길게 보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고 썼다(1999년, 공저,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끝까지 "척탄병(폭탄을 손으로 던지는 병사)"으로 남고 싶다던, 남고자 했던 그의 태도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어 간다. 
 
"우리는 '바위는 확실히 부서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은 더 좋은 세상이 아닌, 덜 추악한 세상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아직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좌절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은 이나마 인간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비록 소수이지만 덜 추악한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간다.'"

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지은이), 한겨레출판(2020)


태그:#홍세화, #결거침에대하여, #서평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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