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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에는 노인복지관 평생 교육프로그램으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다. 3월 초부터 다녔으니 거의 두 달이 다 되었다. 우리 반은 글쓰기 중급반으로 기초반을 1, 2년 수강하신 분들이다. 나는 시인으로도 등단했고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어서 기초반을 건너뛰고 중급반을 신청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

수강생이 20명이다. 70세가 가장 많고 60대와 80대는 3~4명 정도 있다. 70대 부부가 함께 수강하는 분도 두 팀이다. 부부 수강생은 같이 앉기도 하고 따로 떨어져서 앉기도 하는데 글 속에 본인이 등장할 때는 쑥스러워하신다.

아내가 주로 남편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즉 잘한 일보다는 실수한 일이나 속상했던 일, 엉뚱한 일 등을 주로 글에 쓰는데 듣는 우리는 너무 재미있어 깔깔대고 웃느라 수업이 끊기기도 한다. 나이 들어 부부가 함께 공부하며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사님께서 매주 글쓰기 숙제를 내준다. 몇 개의 주제를 주고 마지막에는 자유 주제를 꼭 넣어주신다. 주제에 맞게 써도 되지만 언제나 주제와 상관없이 자유 주제로 글을 써도 된다. 쓴 글을 메일이나 카카카오톡으로 보내라고 하신다.

메일을 사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다. 글을 하루 전까지 미리 보내면 좋은데 꼭 목요일 수업날 아침에 보내는 분도 계셨다. 그러며 글이 소개가 안 되어 섭섭해하신다. 10시부터 수업이니 강사님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다. 당연히 당일 아침에 보낸 글은 수업에 반영이 안 된다. 그러던 어르신들이 요즘 숙제를 잘하신다고 강사님께서 칭찬해 주신다.

등단 했어도 유용한 글쓰기 수업... 어르신들이 쓴 글은 책 한 권 
 
숙제로 보낸 글을 화면에 띄워 쓴 사람이 직접 낭독하며 생각을 나누고 있다.
▲ 노인복지관 글쓰기 반 수업 장면 숙제로 보낸 글을 화면에 띄워 쓴 사람이 직접 낭독하며 생각을 나누고 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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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은 수업 시간에 수강생이 보낸 글을 다듬어서 PPT로 정리해서 가지고 온다. 시도 조금 수정해 주고, 에세이도 수정해 준다. 수업 시간에 보면 정말 잘 쓴 글이 되어 본인조차도 놀라워한다. 나는 주로 시를 보내는데, 시를 쓰면서 넣을까 뺄지 조금 고민이 되었던 부분을 강사님께서 수정해 주셔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글을 쓰는 나지만, 역시 글쓰기 수업은 필요하다.
  
이제 수업 시간이다. 한 분씩 쓴 글을 읽는다. 시도 있고 에세이도 있고 종류가 애매한 글도 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직접 읽는 것이 처음에는 쑥스러웠는데, 점점 자신감이 생겨 모두 자연스럽게 낭독한다. 강사님은 매번 우리가 쓴 글을 '책 한 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인지 글쓰기를 하면서, 바쁘게 지내느라 잊고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다른 분이 쓴 글을 읽으니 옛날에 있었던 일이 자꾸 생각나네."

지난 주 수업 중인데 어르신 한 분이 위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여기저기에서 "맞아요. 나도 그래요"라고 공감을 하였다.
 
4월 둘째 주 수업 장면
▲ 수업 장면 4월 둘째 주 수업 장면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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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는 부모님 이야기, 부부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자식 이야기, 친구 이야기, 손주 이야기 등이 들어있다. 책은 결국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노인복지관 글쓰기반 글은 대부분 1960년대 또는 70~80년대가 담긴 일종의 우리들의 자서전이다. 글을 쓰면서 부모님과 화해하고 불행하게 지낸 어린 시절과도 화해한다.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고 일상의 소중함도 깨닫는다.

이제 글감 찾기 고민은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글쓰기반 어르신들이 글감을 찾지 못해 고민이 많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글쓰기 수업이 진행되면서, 요즘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일들이 툭 튀어나와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어 또 한 편의 나의 글이 완성된다. 이제 글감 찾기 고민은 안 한다. 어르신들이 쓴 글 자체가 참 아름다운 책 한 권이라고 느껴진다.

이번 주에 한 분이 '첫 번째 남자, 아버지'에 대한 글을 발표하셨다. 옛 시절 돈이나 권력이 꽤나 있었다는 분들은 한 명 외에도 두 번째 부인을 두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맞아', '그땐 그랬어'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글쓴이가 그 자녀들과의 관계, 즉 엄마가 다른 형제들이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경청했다.

그 분께서 다음 주 글쓰기는 '두 번째 남자, 남편'이고 그다음 주에는 '세 번째 남자, 아들' 이야기를 써서 들려준다고 해서 모두 기대하고 있다. 남자들의 좋은 점보다는 엉뚱한 일, 이해 못 할 일 등의 이야기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남자 시리즈 글을 보며 다른 분들의 아버지, 남편, 아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강사 선생님이 아일랜드에 여행가서 보고 온 문학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스 저자) 작가가 집필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 강사 선생님의 수업 장면 강사 선생님이 아일랜드에 여행가서 보고 온 문학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스 저자) 작가가 집필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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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 글쓰기반 수업은 늘 화기애애하다. 분위기가 정말 좋다. 목요일 11시부터 1시간 수업을 하고, 점심 식사 후에 이어서 1시부터 2시간 동안 수업을 한다.

어르신들이 쓴 글도 나누고 강사님의 시나 수필에 대한 글쓰기 이론 수업을 듣다 보면 끝나는 시간이 아쉽다. 어르신들의 수업 태도가 정말 좋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모두 우등생이 되었을 거다.

글은 그 사람 자체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이나 성격이 나온다. 강사님은 글을 보면 어떤 어르신이 쓴 글인지 이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노인복지관 글쓰기 수업을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이다. 글 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글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 만나는 분들은 저절로 끈끈해진다. 왠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하게도 느껴진다.

글쓰기반 수업으로 슬기로운 노인복지관 생활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매주 목요일 스무 명의 사람 책 이야기는 계속될 거다. 많은 종이책이 있지만, 요즘 나는 글쓰기반에서 읽는 사람 책이 더 재미있다.
   
많은 종이책이 있지만, 요즘 글쓰기반 사람 책이 더 재미있다.
▲ 우리 집 책장 많은 종이책이 있지만, 요즘 글쓰기반 사람 책이 더 재미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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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될 수 있습니다.


태그:#노인글쓰기, #노인복지관, #사람책, #평생교육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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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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