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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CITES동물보호시설에 전시된 야생동물 불법 밀수 가방.
 국립생태원 CITES동물보호시설에 전시된 야생동물 불법 밀수 가방.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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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스 아래쪽에 한 칸을 더 만들어서 뱀과 같은 파충류를 불법으로 들여오다 적발됐죠. 이 가방엔 인형이 가득했어요. 그 안에 인도별거북 같은 멸종위기종을 인형인 것처럼 속이려고 테이프로 머리만 빼놓고 칭칭 감은 상태였습니다. 텀블러나 페트병에 넣은 것도 있고요, 인도네시아 유황앵무새 같은 것들은 알 상태로 밀반입하다가 적발됐습니다. 대규모 불법 번식장에서 20여일만에 부화를 시킬 수 있거든요."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관리연구실 실장(수의사)이 전한 국제적멸종위기동물(CITES동물) 불법 밀수 방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기상천외했지만, 동물들에겐 잔혹했다. 멸종위기종 1급을 들여와서 증식하는 과정에서 색깔변이 등을 일으킨 돌연변이들은 많게는 현지에서 지불한 돈의 100배가 넘는 이익들 취할 수도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수·밀거래 적발된 국제멸종위기종 268개 개체 보호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관리연구실 실장이 국제적멸종위기동물(CITES동물)보호시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관리연구실 실장이 국제적멸종위기동물(CITES동물)보호시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환경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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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국립생태원을 방문한 환경부 기자단에게 CITES동물보호시설을 안내한 김 실장은 밀수·밀거래 실태와 이 과정에서 CITES동물이 처한 심각한 현실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CITES동물보호시설은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던 밀수, 유기, 불법사육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2021년 8월에 준공됐다. 전시공간에서는 불법 밀수·밀거래 현황과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야생동물들의 참혹한 현실이 확인할 수 있다. 사육공간에는 밀수와 유기, 불법 사육하다 적발된 포유류, 양서파충류 등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시설이 운용된 지 2년 정도 지났는데, 현재 보호하는 동물 개체 수는 53종 총 268개에 달한다. 파충류가 239개로 가장 많고, 조류 20개, 양서류 5개, 포유류 4개 순이다. 김 실장의 말처럼 불법적으로 들여오다가 세관에 적발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육하다가 버려지거나 탈출해서 야생에서 발견된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전시실 입구 쪽에는 장난감 뱀 속에 초록나무비단뱀을, 텀블러 안에 왕도마뱀을 넣거나 스테인리스 김치통과 같은 속 철재 구조물 등에 넣어 밀수하는 등의 다양한 불법 밀수 방식이 소개돼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텀블러를 가리키며) 이게 금속으로 돼 있어서 세관에서의 엑스레이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엑스레이 화면을 보여주며) 웬만한 금속은 다 뚫어 볼 수 있기에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환경새뜸] ‘악어 소동’ 왕도마뱀, 여기 있습니다... 국립생태원 CITES동물보호시설 탐방 지난 2일 국립생태원을 방문한 환경부 기자단에게 CITES동물보호시설을 안내한 김영준 동물관리연구실 실장은 밀수·밀거래 실태와 이 과정에서 CITES동물의 처한 심각한 현실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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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국제멸종위기보호종(CITES) 보호시설에 있는 인도별육지거북(국제 멸종위기 1급)
 국립생태원 국제멸종위기보호종(CITES) 보호시설에 있는 인도별육지거북(국제 멸종위기 1급)
ⓒ 환경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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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과정서 173개체 폐사... '악어 소동'사바나왕도마뱀도 보호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밀수한 야생동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이다. 김 실장은 '아픔의 흔적'이라고 적힌 전시공간 앞에 멈춰 섰다. 흰손긴팔원숭이의 건강검진 방사선 사진이 걸려있었다.

"흰손긴팔원숭이는 나무에 매달려 삽니다. 물을 상당히 무서워하고, 나무 밑으로 내려오지 앉습니다. 그러니 팔이 길어졌겠죠. 여기 엑스레이 사진이 정상인 어깨뼈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을 아파트에서 키우니 고릴라처럼 어깨뼈가 휘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녀석들은 새끼를 한 마리씩 낳아 키우는 유인원입니다. 그냥 뺏어올 수 없었겠죠. 어미를 총으로 쏴 죽인 뒤 가져왔을 겁니다. 이런 야생동물은 배로 밀수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죽죠."

실제로 이곳에 도입된 개체 수는 총 441개였지만, 173개체가 폐사했다. 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종은 부화 직후에 밀수된 인도별육지거북이다. 81개체 중 58개체는 검역 중에 폐사했다. 너무 어린 상태에서 밀수해왔기 때문이다. 441개체 중 밀수는 362개체로 82%를 차지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CITES동물보호시설 보호 시설 수조에 있는 돼지코거북
 국립생태원 CITES동물보호시설 보호 시설 수조에 있는 돼지코거북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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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사육공간은 국제멸종위기야생동물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밀수 과정에서 살아남은 인도별육지거북 20여 마리가 울타리 안에서 쉬고 있었다. 투명유리 울타리에 있던 물왕도마뱀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수조안에 있던 돼지코거북은 입을 쩍쩍 벌리며 춤을 추듯이 앞다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사람들의 손을 탔다는 흔적이다.

TV동물농장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서벌'은 아프리카가 원산인 고양이과 동물로 원종 서벌과 일반고양이를 교잡해 나온 1세대다. 호주가 원산지인 솔방울도마뱀 2쌍(4마리)은 수하물로 들여오다가 적발이 됐는데, 한 쌍에 400∼500만 원이지만 번식해서 알비노가 나오면 몸값이 억대로 치솟는다. 지난 6월 '악어 소동'으로 논란이 되었던 1m 크기의 사바나왕도마뱀을 포함한 48종의 동물들이 이곳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아프리카살쾡이로 불리는 서벌(국제 멸종위기 2급).
 아프리카살쾡이로 불리는 서벌(국제 멸종위기 2급).
ⓒ 환경부 기자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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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만원에 밀수해 300~400만 원 판매되기도... 종 자체 생존도 위협

현행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CITES 생물을 도입하려면 허가를 받도록 하고 이를 위반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멸종위기야생동물의 밀수·밀거래가 이뤄지는 까닭은 남들이 키우지 않는 희귀 동물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차익을 많이 남기려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정식 수입원가 200만 원의 거북이를 마리당 6∼8만원으로 밀수하여 다시 300∼400만 원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또 새끼들을 들여와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감당 못할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 유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CITES동물보호시설의 상황도 녹녹치 않다. 60억 원을 들여 2162㎡의 면적을 확보했지만, 불과 2년여만에 60% 정도가 채워졌다.

김영준 실장은 "동남아에서 밀수해오는 야생동물들이 대부분인데, (밀수해 온 나라로) 되돌려 주는 게 이상적이지만 전염병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최근 적발돼 이곳에서 보호하는 야생동물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열대 동물을 겨울에 데리고 있으려니까 에너지 소비 등으로 어려움이 많고 협소한 공간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도순 국립생태원장이 지난 2일 충남 서천 본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조도순 국립생태원장이 지난 2일 충남 서천 본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 환경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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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국립생태원에서 창립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트레버 샌드위드(Trevor Sandwith)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국장은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이 밀거래가 되는 것은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 있고, 특히 종 자체의 생존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밀수에 의한 강제적인 이동으로 새 둥지를 트는 서식지의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도순 국립생태원장은 학술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10년 전에 설립된 국립생태원은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전하고 생태 위기 대응하고자 해왔다"면서 "향후 10년 동안 인류와 생태계를 지구의 환경위기와 생태계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국랩생태원, #CITES동물보호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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