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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어릴 때 저는 아파트 4층에 살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까지 걸어 올라가려면 항상 겪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었죠. 당시 같은 라인 2층에 아주머니와 언니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분들이 치와와를 키웠거든요.

5층 아파트라 집에 가려면 계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근처만 가도 짖기 시작하는 통에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한 저에게는 큰 두려움이었죠. 우리 집은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짖기만 하는 데도 저는 개가 참 무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두 명과 우리 집에서 놀기로 한 것 같아요. 그날따라 손님이 왔는지, 아니면 환기를 시키려고 그랬는지 대문이 열려 있었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치와와가 갑자기 뛰어나왔죠. 졸지에 초등학생 3명은 고함을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쳐야 했어요. 4층 집 앞에 왔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죠. 멈췄다간 물 것 같았으니까요.

당시엔 옥상 문을 열어 두던 시대였고, 쫓겨서 옥상 문 앞까지 겨우 갔는데, 문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아뿔싸, 문이 잠겨 있는 거예요. 개는 바짝 쫓아와 짖고 있지, 문은 열리지 않지 기겁하며 셋이서 엉엉 울었던 게 생각납니다.

개는 주인이 불러서 다시 내려갔던 것 같은데 막다른 길, 계단 한 칸을 사이에 두고 바들바들 떨었던 느낌은, 성인이 된 지금도 생생해요. 

그래서 저는 매일 걸으러 나갈 때 웬만하면 차가 많이 다니는 차도 옆 인도를 주로 걷습니다. 강변길같이 사람도 개도 안전한 곳에는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목줄이 긴 개가 제 옆에 오지 않도록 잘 붙들어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 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 아예 개를 만날 일이 잘 없는 곳을 걷는 게 맘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그 경험 때문에 개를 보면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목덜미부터 굳어지니까요.

애견인은 잘 모를 비애견인의 마음

애견인들은 개를 무서워하지 않아서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개가 지나갈 때 느끼는 감정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개는 목줄을 하고 있어도 자기가 가고 싶으면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니 언제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것도요.

개를 알아야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아 저도 <개는 훌륭하다>(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사람과 반려견이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취지의 TV 프로그램)를 보곤 하는데요.

강아지가 노즈워킹(개가 코를 사용하는 모든 후각 활동)을 하는 것은 행복을 넘어 인간이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과 비슷한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고 맞은편 보행자 쪽 전봇대에도 오고 싶어 하나 봅니다.

저는 매일 적게는 만 보, 많게는 만 오천 보 정도를 걷기 때문에 여러 길을 걷게 되는데요. 우리 동네 어떤 길은 폭이 좁아 2m가 채 안 되는 보행통로도 있답니다. 게다가 도로에 내려서지 못하도록 길가에 펜스까지 처져 있지요.
 
산책하는 모든 사람과 개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산책 산책하는 모든 사람과 개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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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그곳을 지나가야 할 때면 빠른 걸음으로 얼른 벗어나려 합니다. 지난번처럼 저 앞에서 큰 개가 오면, 사람들만 지나가도 서로 비켜서야 할 정도인 폭 때문에 난감하거든요. 그 좁은 길에서 혹시라도 그 개가 제 쪽으로 온다면... 아, 정말 생각해도 당황스럽네요. 휴~.

그래서 길 폭보다 목줄이 길어 개가 가까이 올 수 있을 것 같으면 멀리서 먼저 지나가길 바라며 멈춰 서 있거나, 잘 붙들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지금 줄 잡고 있잖아요?"라고 기분 나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줄은 잡고 있어도 개는 언제든 제 다리 부근에 올 수도 있으니 그렇게 말한 것인데...

물론 그럴 때 저의 표정은 무서워하는 마음과는 달리 화가 난 듯 보일 수도 있어요. 무서운 건 무서워하지 말자고 마음먹어도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무의식에서 저도 모르게 나오는 반응이라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 바퀴벌레, 벌, 뱀 등을 무서워하는 사람... 대상은 달라도 각자 무서워하는 것, 다들 있잖아요? 마찬가지랍니다. 누군가에게는 개도 그렇게 무섭고, 보면 긴장하게 되는 대상이거든요. 

저는 보호자가 개를 데리고 나와서 싫다거나 개를 혐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드는 무섭다는 생각 때문에 좀 도와달라는 것인데 숨겨지지 않는 얼굴의 긴장감이 아마도 오해를 부르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당신도 두려움을 느끼는 그 무언가와 마주치면 저처럼 옆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을 거예요. 그것이 개라면 그 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보호자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고요.

"아니, 어떻게 이 귀여운 생명체를? 우리 개가 얼마나 이쁜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당신도 알 수 있을 거예요"라고 생각하시는 보호자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저도 그 개를 휴대 전화 사진으로 보거나 보호자의 품에 안겨 제 옆에 올 가능성이 거의 없어 안전하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정말 귀엽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요.

실제로 저의 휴대 전화 잠금화면에는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사진이 계속 바뀌며 나오도록 해 놔서 전화를 보려고 꺼내면서 '아이고, 귀여워라' 하며 쳐다보곤 하니까요.
   
미소 짓게 만드는 강아지 사진
▲ 귀여운 강아지 미소 짓게 만드는 강아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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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아시나요? 2022년 기사 내용이긴 하나, 2016~2020년 사이 개 물림 사고가 총 1만 1,152건으로 하루에 약 6건꼴로 있었다는 것을요(출처 : 반려견 목줄 2m 넘으면 과태료 최대 50만원…유명무실 우려도). 이는 강아지가 보호자 옆에서는 한없이 얌전해도 처음 보는 저에게는 입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혹시 앞으로 길에서 당신의 반려견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최대한 멀어지는 사람을 보거나 목줄을 짧게, 잘 잡아달라고 부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무서워서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보호자인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구나'라고 한 번쯤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요.

물론 비 애견인의 투박한 표현에 보호자가 상처받은 일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또 어쩌면 자신이 느끼는 공포 때문에 감정 조절을 잘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이해'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화난 것처럼 표현된 거라면 그 속엔 '약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한 번쯤 말하고 싶었어요. 저처럼 말이죠.

물론 보호자 중에는 제가 개를 자꾸 쳐다보며 피할 때 목줄을 거머쥐어 개를 몸쪽으로 바짝 당겨주고는 괜찮다고,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이기도 해요. 그러면 고마운 마음에 저도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며 지나가죠.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릴 때 겪은 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해도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보호자를 믿으며 안전한 산책길, 걷고 싶은 강변길을 저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반려견, #강아지, #비애견인, #무의식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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