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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과 논술이 되면서 반가운 것 가운데 하나가 논술에 문학 작품을 해설하라는 논제의 등장이었다. 2008학년도 논술 모의고사에서 고려대학교와 서울대학교가 시를 논술 문제로 출제하였다. 고려대학교는 최정례의 시 '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를 마인하르트 미겔의 <성장의 종말>(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구매 욕구는 광고에 의해 형성된다는 부분을 다듬어 제시)과 관련지어 시를 해설하도록 하였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성삼문의 '절명시'를 제시하고 이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기술하라고 하였다.

논술에 문학 지문을 등장시킨 것은 아이들의 감성적인 부분과 지적인 부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키워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시의 경우는 말맛을 체득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언어 품격을 높여 줄 수 있으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사람의 삶을 말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작품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녹아 있다. 문학 논술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작품을 이해하는데서 시작하여야 한다. 작품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감성적인 부분은 자연스레 길러질 것이다. 작품 해설은 근거를 갖춰 논리적으로 서술되어야 하므로 논리적 서술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다. 논제에서 작품 해설에 대한 조건을 주고 있으므로 그 조건과 작품을 하나로 묶어야 하므로 통합적 사고력도 자연스레 길러질 것이다.

그리고 논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를 꼼꼼히 읽어야 함으로 자연스레 체득한 가락이나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품격 높은 언어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 논술로 들어오는 반가움에 그 흉내를 한 번 내어 보았다.

* 다음 시를 바탕으로 '시인'을 정의하고, 그 이유도 말해보시오.(600자 내외)

산문시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신동엽


이 작품에 다가설 수 있도록 먼저 시를 읽어 보도록 하였다. 이 작품은 산문시이므로 제대로 끊어 읽어야 가락도 살아나고 내용도 이해할 수 있다. 두세 번만 읽게 하면 제대로 끊어 읽을 수 있어 내용 파악은 쉽게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시가 1960년대 쓰인 시라는 것을 말해 준다. 아이들은 196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알고 있으므로 굳이 그 시대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겨 둔다.

시인은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지성인이다. 무력과 차별, 헛된 권위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스칸디나비아라는 곳을 동화처럼 평화로운 공간을 그려놓음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시인이 그려놓은 이상 공간과 권력의 횡포가 심했던 1960년대의 우리 모습, 아니 현재의 우리 모습과도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대통령은 여느 집 아저씨와 다름없고, 국무총리는 휴가여행을 떠나기 위해 대합실에 줄서 있다. 농부들은 대학을 나왔다. 권력, 학벌, 돈으로 위장된 헛된 권위를 넘어선 진정한 평등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배움의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래서 농민과 광부가 예술을 가까이 하고 책을 읽는 풍경도 보인다. 이것이 지성적 국민성으로 이어져 무력에는 절대로 가담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시인은 이 신념을 사내다운 모습이라고 예찬하면서 무력에 희생된 우리의 역사도 살짝 떠올리도록 한다.

이렇듯 시인은 단순히 이상향을 꿈꾸기보다는 현실 문제의 핵심을 짚어가며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는 존재이다. - 부산국제외고 3학년 정혜지


학생은 시인을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잘못된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하는 지성인이라 정의하였다. 이렇게 시인을 정의한 것은 작품에 묘사하여 놓은 스칸디나비아라는 공간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동화처럼 평화로운 공간과 1960년대의 모습 나아가 현재의 우리 모습과도 대비가 되기 때문이다.

한 국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모습을 묘사하여 우리 사회의 만연된 헛된 권위는 무너져야 함을 일깨우고, 사회적으로 무시 받는 농민과 광부가 예술을 가까이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음으로써 문화와 교양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넉넉한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이러한 흐름이 하나의 힘이 되어 어떠한 무력에 대해서도 거부할 수 있는 평화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제시하였다. 이렇듯 시인이 제시한 이상향은 단순한 먹고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재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그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시인을 이상주의자라고 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학생들은 수능 문제에서 시를 대하는 것과는 달리 살짝 귀띔만 하여 주면 자기의 생각을 마음껏 펼친다. 그것도 근거를 제대로 갖춰서.

논술이 표현력과 사고력을 키워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향기로운 삶을 키워주고 살찌워주기 위해 논술에 문학 지문이 각 대학으로 널리 퍼져나가길 욕심 부려본다.

태그:#논술, #통합교과, #문학,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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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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