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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외면 고인돌 지표조사 중 신규로 확인된 유적인 ‘신학리 고인돌유적분포지’에서 지난 18일 고인돌 형태가 선명히 드러났다. 
  군외면 고인돌 지표조사 중 신규로 확인된 유적인 ‘신학리 고인돌유적분포지’에서 지난 18일 고인돌 형태가 선명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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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군외면 고인돌 지표조사 중 신규로 확인된 유적인 '신학리 고인돌유적분포지'에서 지난 18일 고인돌 형태가 선명히 드러났다. 이번에 확인된 유적은 (재)고대문화연구원이 정확한 고인돌 범위와 하부구조 확인을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보존 및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진행했다.

조사지역 내 문화재 시굴조사 과정에서 동-서 방향으로 열을 지어 형성된 고인돌을 14기로 확인했지만, 하부구조 하나를 따로 발견해 모두 15기의 고인돌 유적을 접수했다. 조사지역 내 중앙에 고인돌 상석이 위치하고 있었지만, 조사단은 세월이 지나고 또 주변의 경지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상석이 이동했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에 조사단은 밀집된 상석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조사트렌치를 설정하고 나머지 상석을 중심으로 십자형 트렌치를 설치해 하부구조가 남아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조사했다.

신학리 고인돌은 대부분 수풀과 잡목이 우거져 있는 상태로 일부는 경작지 조성과정에서 나온 크고 작은 상석을 그 주변에 쌓아두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탐문조사 과정에서 고인돌 아래 공간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된 것과 집안의 쓰레기를 모아서 태우는 공간으로 활용된 점으로 보아 지역 내 선사유적의 조사와 선사유적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전환, 정밀발굴 등의 시급함을 알렸다.

실제로 1기의 고인돌 하부에서는 깨진 유리조각과 타고 남은 쓰레기가 일부 나왔고, 불에 그을린 흔적이 확인됐다. 일부는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상석이 깨진 것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곳에 형성된 고인돌 군락은 개석식과 기반식이 혼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굴조사단은 "완도군에서 조사가 실시된 고인돌은 지난 2015년 신지면에 송곡유적으로 조사 당시 훼손이 많이 이뤄져 정확한 양상이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신학리 고인돌 유적조사는 하부구조의 뚜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고인돌 유적조사 관련한 예산이 확보되면 정밀발굴 조사가 진행돼 하부구조의 형태와 특징을 확인하여 지역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발표했다. 다만, 이번 유적조사와 관련해서 관련부서의 보도내용이 없었다. 지난 청산도 고분 발굴 조사나 법화사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거석문화의 모든 것, 고인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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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무덤의 기능만 한 것이 아니다. 돌을 숭상하는 거석문화의 모든 것이 고인돌문화에 포함된다. 

선사유적과 관련해서는 이 외에도 불목리 저수지 인근이나 대야리 저수지 인근에 고인돌이 분포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 상태다. 실례로 독바위골, 독고개, 상, 왕, 흑, 석, 검, 덕, 말, 마, 천, 고, 덕흥, 신흥, 도암, 분토 등의 지명을 가진 지역은 대부분 선사시대 유적의 분포지일 가능성이 크다.

완도의 상왕산, 신지도의 상산 같은 곳은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마한세력의 소도의 역할까지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영암 월출산 상황봉에서 마한의 소도 역할이 증명된 유적발견 사례가 있기 때문에 상부 인근 바위주변을 조사해 볼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가유산에 관한 지역민들의 인식전환,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업무추진 능력, 공모사업 등을 활용한 예산확보 등 여러 활동상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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