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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MBC에서 방영된 <조선왕조오백년 - 임진왜란>의 오프닝 장면입니다. 노을이 지는 남해바다에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며 유유히 노 저어 가는 거북선의 모습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의 오프닝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 KBS/MBC
2005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순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KBS에서 2004년부터 시작한 <불멸의 이순신>이 남성들은 물론 온 국민을 TV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느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도 이순신 장군이 TV앞에 온 국민을 붙잡아 두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6년 MBC에서 방영된 <임진왜란>을 기억하십니까? MBC <조선왕조 오백년>이라는 사극 시리즈 중 하나로 제작된 것이었는데, 얼마 전 고인이 된 김무생씨가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았었죠. <허준>, <대장금>으로 유명한 이병훈 PD가 연출을 맡았던 점도 이채롭습니다, 당시 김무생씨의 인기는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김명민씨를 능가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임진왜란>에서 함포 공격을 받고 있는 적선의 모습입니다. 물방울이 튀기고 폭약이 터지는 모습이 <불멸의 이순신>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기술이 떨어진다면 보다 나은 고증과 성실한 연출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KBS/MBC
80년대 군부독재의 군홧발에 억눌렸던 가슴 답답했던 그 시절. 사람들은 그나마 이 방송을 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과 <불멸의 이순신>

▲ <임진왜란>에서 신기전을 발사하고 있는 조선 함대입니다. 신기전은 요즘의 미사일과 같은 역할을 하였으며, 다연발 로켓포처럼 수십 개가 연속으로 발사되어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적진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의 함대함 포격전에서는 포트리스(작은 대포 게임)의 검은콩 탄이 날아가는 듯한 모습만 보여줘 조금 아쉽습니다.
ⓒ KBS/MBC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는 그 시절, 뿌연 연기를 내뿜던 거북선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국내 최초로 '미니어처'라는 개념을 도입해 전투장면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했던 MBC <임진왜란>과 KBS <불멸의 이순신>을 비교해 보며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 보려 합니다.

MBC <임진왜란>은 '미니어처'라는 작은 장난감 모형들을 수영장 물 위에 띄워 놓고, 대형선풍기와 조명 등을 이용해 전투신을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아직도 30~40대는 이런 부분을 아련히 기억하고 있지요. 하지만 20년 전에 제작된 <임진왜란>의 해상전투 장면은 3D로 제작된 최근의 <불멸의 이순신>전투장면에 비교해 볼 때 결코 웅장한 맛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작 기법이나 세트장의 규모는 <임진왜란>의 오프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멀리 아스라이 사라지는 일몰을 향해 거북선이 유유히 물살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광경이 전부인데 이 장면은 소형 거북선 모형을 수영장 물위에 띄워 놓고 구름이 들어간 하늘 배경 그림과 저 멀리서 붉은 조명을 비춰 일몰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지만 어설퍼 보이지는 않습니다.

▲ <임진왜란>에 등장하는 왜장의 모습인데, 의상과 대사 모두 멋지게 그려 놓았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상당히 바보스런 왜장도 등장하는데, 이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멋진 적을 완벽하게 무찌를 때 '우리 편'이 더 멋져 보인다는 사실을 담당 연출선생님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KBS/MBC
해상전투 장면은 작은 장난감 모형을 이용, 실제 폭약을 물 속에서 터뜨리며 원거리에서 촬영했지만 실제 크기의 함선 위에서 찍은 장면이 절묘하게 결합돼 생동감있는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장감과 섬세한 연출력 덕에 요즘의 컴퓨터 합성 전투장면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매력도 느껴집니다.

반면 이순신 장군 열풍을 다시 몰고 온 KBS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 그 규모 면에서도 웬만한 영화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350억원이 넘는 제작비와 연 1만5000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초대형 슈퍼 울트라 드라마'라 불릴 정도로 대규모 자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물량적 우위와 한층 진일보한 제작 기술, 컴퓨터를 이용한 3차원 그래픽의 적용 등으로 세련되고 웅장한 화면 속에 이순신을 재탄생 시킨 것이죠.

86년 이순신과 2005년 이순신, 그리고 1592년 이순신

실존 인물 이순신을 이해하려면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을 비롯한 다양한 당시의 역사사료 속에서 그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물론 <난중일기>의 경우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서술했고 <선조실록>의 경우 당쟁으로 인해 많은 첨삭이 가해진 사료지만 그래도 몇 가지의 내용을 종합비교해 보면 인간 이순신과 성웅 이순신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난중일기>에 그려진 이순신은 전장에서 결코 쉬거나 물러섬이 없고, 수하 군사들과 백성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쏟은 장군 중에 장군이었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일방적으로 강화를 주장하고 싸움을 회피하려고만 하였다. 또한 3월에는 명나라 지휘관은 공(이순신)에게 싸움을 중지하고 돌아가라는 패문까지 보냈다. 이에 공은 '우리 땅이 바로 여기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고 항의까지 하였다. 전염병으로 10여 일을 앓는 등 자주 아팠으나 군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전염병으로 죽은 군사와 백성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주고 또한 글(제문)을 지어 위로해 주었다. 10월에는 장문포의 왜군을 수륙 연합으로 협공하여 승리하였다."<난중일기 中 갑오년 (선조 27년) 내용>

또한 정조시대에도 이순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 <이충무공 전서>가 편찬되었고, 임금이 직접 이순신 장군의 무덤 앞에 세워진 신도비에 글을 내려 그를 조선 최고의 영웅으로 치켜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실제의 이순신과 드라마 속에 그려진 이순신은 어떻게 다를까요?

▲ <임진왜란> 중 노량해전에서 적을 향해 돌격명령을 내리는 이순신 장군(고 김무생씨)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 너무도 비장한데, 한 손에는 칼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칼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요즘의 <불멸의 이순신> 장군도 열심히 칼집을 들고 싸우십니다. 장군님 이제 그만 칼집을 허리춤에 묶어 두시지요.
ⓒ KBS/MBC
86년 MBC의 이순신은 고 김무생씨가, 2005년 KBS의 이순신은 김명민씨가 맡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 장군의 강인한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전 김무생씨의 연기를 살펴보면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장군으로써의 공적이고 단호한 모습이 주되게 표현됐습니다. 당연히 연기도 조금 딱딱합니다.

반대로 2005년 이순신 김명민씨는 이순신의 내면과 인간적인 모습을 주되게 보여줍니다. 강인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드러운 장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이순신의 각기 다른 부분을 부각시키다 보니 자연히 두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이순신에 대한 느낌도 다릅니다. 전체적인 드라마 흐름으로 놓고 보자면 <불멸의 이순신>보다는 20년 전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훨씬 깔끔합니다. <임진왜란>에서는 소설적인 가미 없이 조선왕조실록과 난중일기 등 역사사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독백보다는 공적이고 사실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드라마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죽어가던 순간까지도 조금은 야속한 마음이 들 정도로 짧게 편집되어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 <불멸의 이순신> 은 <칼의 노래>나 <불멸의 이순신>과 같은 소설이 역사사료 속에 녹아들어, 영화 같은 인생을 살다간 성웅으로 이순신 장군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과거 <임진왜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다양한 영화적 촬영기법이 드라마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강한 인상이 남게 됩니다.

▲ 20년 전에도 화전(花箭)은 역시 불이 활활 타오르며 상대에게 날아갔습니다. 그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불화살은 활활 타오르면 잘도 날아갑니다. 조선군도 일본군도 모두 똑같습니다. 허나 그렇게 불화살이 활활 타오르면 작약통이 먼저 터져 아군이 먼저 죽는다는 기본적인 무예사 고증의 오류를 범했습니다.
ⓒ KBS/MBC
이 두 드라마의 차이는 마치 양념을 최소화하여 몇 개월간 푹 삭힌 담백한 맛이 나는 절간의 백김치와 온갖 양념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갓 담근 싱싱한 햇김치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무예사 고증 '옥에 티'

두 드라마를 비교하다보니 탤런트 김진태씨가 두 드라마에 다 나오더군요. 김진태씨는 MBC <임진왜란>에서는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군의 역할을 했지만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 역병에 걸려 한 많은 삶을 살다간 남해 물길의 귀재, 광양 현감 어영담으로 열연했습니다. 그 두 장면만 번갈아본다면 20여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마도 본인이 느끼는 격세지감은 더욱 크겠지요.

▲ <임진왜란>에서 명나라 장군 역할을 한 김진태씨의 경우 <불멸의 이순신>에서 남해 물길의 귀재, 광양 현감 어영담의 배역을 맡았습니다. 얼굴만 비교해 보아도 20여 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KBS/MBC
그러나 아쉽게도 이 두 작품 모두 역사고증에 옥에 티가 있었습니다. 아니 20여 년 전 <임진왜란>에서 실수한 것을 오늘날 KBS <불멸의 이순신>이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 장교들이 칼을 칼집에 넣은 채 늘 들고 다니는 장면과 조선군들이 당파(삼지창)만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 불화살에 불이 활활 타서 날아가는 장면 등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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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칼집을 어디다 팽개쳤을까?


조선의 경우 환도(還刀)라 하여 칼집에 고리가 달려 이것을 허리춤에 묶어 활동성을 높이는 칼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있었고, 전투가 끝나면 칼집을 애써 찾는 대신 허리춤에 바로 꽂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파(삼지창)문제는 거의 고질병 수준인데, 임진왜란 시에는 당파보다도 월도가 왜군의 칼을 제압하는데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화전(火箭) 문제는 역사퇴보의 순간으로 그렇게 쏘면 불화살이 날아가는 대신 작약통이 터지게 됩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연출진의 배짱 혹은 무지입니다.

▲ <임진왜란>에서 당파만을 들고 열심히 달려가는 조선군의 모습입니다. 요즘의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아마도 그때 사용한 물품들을 재활용하여 촬영한 것일까요? 제작비가 100억 넘어 가면 무엇 하겠습니다. 조선군의 주요 무기는 당파라는 역사적 착각은 버렸으면 합니다.
ⓒ KBS/MBC

왜 이순신인가

이쯤되니, 약 400년 전의 인물인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해 집니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일본의 '도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독도문제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드라마를 보며 다시금 현재를 떠올리게 되는 게 아닐까요? <불멸의 이순신>에서 왜군을 무찌르는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조금 식상하지만 권선징악적인 흐름과 확실한 대립구도의 설정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선량하고 착한 조선과, 전쟁을 즐기며 악의 화신으로 표현된 일본과의 대립구도 그리고 충신 유성룡과 간신 윤두수 등의 확실한 대립구도 설정 등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드라마의 시청률을 통해서도 금방 확인이 되는데, 일본의 시마네현 '다케시마 조례' 제정과 더불어 <불멸의 이순신> 시청률도 확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 뿐일까요? 광복 60주년을 맞은 지금, 400여년 전의 이순신의 삶이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덧붙이는 글 |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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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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