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1 19:16최종 업데이트 24.04.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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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할 게 따로 있지, 어찌 외로움까지…

뭔가 써질 듯 써질 듯, 자판 위 손가락들도 꼼지락꼼지락 당장이라도 두드릴 준비를 마쳤는데, 머릿속만 간질거릴 뿐 단 한 문장도 써지지 않는다. 벌써 한 시간째 이 꼴이다. 밥을 너무 많이 먹었나? 역시 집에서는 안 되는 건가? 별의별 핑계를 다 대보고, 음악을 들어볼까, 잠깐이라도 산책을 다녀올까 생각하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대가들의 경고, "글은 머리로도, 손으로도 쓰는 게 아니다. 궁둥이로 쓰는 거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건 아닌지, 절로 깊고도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오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산책을 다녀오겠단다. 저녁 8시가 다 돼 가는데 무슨 산책이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따라 나가고 싶은 생각이 꼬물꼬물 비집고 나온다.

유혹을 뿌리치고 자세를 바로 한다. 의자 위에 책상다리까지 하고 앉아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도 다잡는다. 억지로 첫 문장을 쓰고 들어보는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손가락이 재빨리 백스페이스키를 두드린다. 한숨이 새어 나오고 고개가 꺾인다.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될 때는 안되나 보다. 
  

혼자라는 외로움, 어쩌면 진정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인지 모른다. ⓒ 김미래/달리


결국 포기하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머리도 마음도 모두 다 텅 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불현듯 집이 지나치게 조용하단 느낌이 들었다. 웬일인지 창밖 주차장도 조용했고, 그렇게 거슬리던 거실 TV 소리가 오히려 그리워졌다. 

'9시가 넘었는데...'
너무 늦는다 싶어 딸에게 전화했다. 

"아이스 커피가 생각나서 카페에 왔어요."

알았다고 그냥 전화를 끊으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커피냐 투덜댔다. 그런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아리어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노트북 들고 같이 가는 건데...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아쉬움을 넘어 슬쩍 외롭단 생각이 들었다.

온통 깜깜한 어둠 속, 이날따라 아랫집도, 윗집도 너무 조용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상징,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조차 없었다. 거짓말처럼 깊은 산속 오두막에 와 있는 듯한 적막감이 느껴졌다. 

혼자가 된 기분..., 십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우려하고 각오도 다졌지만, 서서히  덮쳐오던 볼 수 없다는 현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감추던, 그때의 외로움이 떠올랐다.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그때를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미어 왔다. 

답답해서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거실로 나오니 늦었지만 나도 뭔가 마시고 싶었다. 부엌으로 가서 더듬더듬 차를 끓였다. 거실 오디오로 잔잔한 음악을 틀고 천천히 차를 음미하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무도 없는 집은 여전히 적막했고 혼자란 기분도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분명 방금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는 여전한 맘속 생채기를 건드린 것처럼 쓰렸었다. 그런데 지금의 외로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나를 채워주는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때의 외로움과 지금의 외로움

'거 이상하네. 뭐가 다른 거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골똘히 생각해 봤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유전자 치료법이 나왔다고 하지만, 아직은 미미한 것이어서 내가 가진 망막색소변성증은 여전히 불치병이다. 객관적인 상황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지 못하다. 지금 내 수입은 훨씬 줄어 있었고, 어렴풋이 형체라도 볼 수 있었던 그때에 비해 지금은 빛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금 느끼는 외로움과 그때 느꼈던 외로움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혹시, 그럼 지금의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닌 건가?'

요즘 '외로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의 문제인 듯하다. 실제로 정치철학자 김만권의 <외로움의 습격>을 보면 외로움은 이미 전 세계적인 문제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외로움'이 뭐길래? 내가 느낀 외로움은 과연 세계인이 느끼고 있다는 그 외로움과 같은 것일까?

<외로움의 습격>에서 저자 김만권은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면서 '어렵고 힘 들때 나를 인정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나 그 상황'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했다. 인터넷에서 외로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봐도 앞의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대인이 겪고 있는 것이 이런 외로움이라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진다. 만약 너무도 어렵고 힘든데도 나를 인정하는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없다면 나는 내가 철저히 버려진 사람이라며 체념할 것이고, 나는 이 사회에 전혀 쓸모없는 존재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다. 한마디로 극도의 자아 상실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리라.

이렇게까지 나 자신이 외로움으로 인해 망가진다면,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욕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이 사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될까?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나를 버린 세상을 원망했던 그 때

생각해 보니 과거의 내가 이랬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내게 간절했던, 나를 인정해 줄 사람과 내게 도움을 줄 사람의 손길은 찾으려고도 하지 않은 채 외로움의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나를 버린 세상을 원망했다. 

다행히도 내 손을 잡아준 가족, 친지, 친구들, 등산화와 함께한 산과 바다, 기타와 음악 덕분에 지금은 늘 곁에 있었던 그 따뜻한 손길들을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외롭다고 느낄지언정 내가 세상에서 버려졌다거나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조금 힘들고 어려울 수는 있어도 이것저것 하고픈 걸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린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장애로 인해 가끔 서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할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무엇을 착각한 것일까?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과 '고독'을 엄격히 구별했다. '고독'은 단순히 홀로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상태'라고 했다. 그야말로 '고독'은 자기 성찰이 가능한 시간이고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란 것이다.

'그럼, 지금 난 외로운 게 아니라 고독한 건가?'

과거 내가 느낀 외로움은, 상황을 착각한 것일망정 진짜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외로움은 외롭다는 느낌 자체를 착각한, 고독인 듯했다.

지난날, 나는, 나만 재밌는 것인지 몰라도 열 편이 넘는 단편 소설과 네 편의 장편 소설을 거침없이 써댔다. 밤을 새우기도 하고, 끼니를 거르기도 하면서.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나도 독자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 꿈에 도전하면서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즐겁기만 하던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어졌고 내 글을 알아주는 독자 하나 없다는 외로움에 맘을 졸였다. 하지만 이 외로움은 나를 성숙하게 했고, 덕분에 사는 이야기 연재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글을 쓰면서 나는 외로움을 느낀 게 아니라 고독을 통해 조금이나마 성숙해진 것이다.
  

글을 쓰면 맘이 열리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외롭다는 착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 김미래/달리

 
사실 내가 과거에 겪은 외로움은 내 탓도 크다. 시력은 사라졌지만, 내 주위에 따뜻한 손길까지 사라진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는데 내가 그것을 애써 외면했으니 말이다. 바보 같이 상황을 착각해서 느끼게 된 외로움이란 얘기다.

반면 진짜 외로운 사람들도 많다. 특히 너무도 치열한 현대 경쟁 사회에서 오로지 노력만을 강조 당한 채 불가피하게 뒤처진 청년들, 분명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이나 타고난 재능이 더욱 중요한 것임에도 이를 갖추지 못해 그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삶에 지친 노인 중에서도 외로운 사람이 많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 소외된 사람 중 너무도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겪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진짜 외로움을 겪고 있는 것이지, 나처럼 운좋게 착각 속의 외로움을 겪는 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란 것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내가 한때 스스로 몰아넣은 외로움 속에서 한없이 헤매고 있었던 것처럼, 혹시 누군가 다른 이들도 이렇게 착각 속에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건 아닐지 조심스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뿐이다.

혹시 내가 외로움을 겪고 있다면 한 번쯤은 이게 착각이 아닐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상황을 오해했을 수도, 느낌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절대 혼자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무리 고수라도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는 자의 훈수를 이길 수 없지 않은가. 착각 속에 빠진 나를 스스로 깨닫는 건 그만큼 어렵단 얘기다. 

그런데 만약 당장 함께할 수 없다면, 글을 써 보자. 촌철살인에만 목숨을 건 것 같은 보여주기 몇 글자나, 기호 같은 줄임말은 말고, 길게 길게 수다를 떨어보자. 일기, 시, 소설, 수필 … 이런 타이틀은 다 필요 없다. 그냥 쓰면 마음이 열리고 나를 외로움의 착각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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