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부산 KCC와 수원 KT 경기. KCC 최준용과 라건아가 득점을 기뻐하고 있다. 2024.5.3

3일 오후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부산 KCC와 수원 KT 경기. KCC 최준용과 라건아가 득점을 기뻐하고 있다. 2024.5.3 ⓒ 연합뉴스

 
'드림팀'으로 불리우던 미국 농구 대표팀이 한창 국제무대를 평정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상대팀들이 가장 압박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슈퍼스타들의 '물량공세'였다고 한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기껏 벤치로 들어가도, 교체되어 나오는 선수가 르브론 제임스나 케빈 듀란트더라"라는 한 문장으로 잘 요약된다.
 
다른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들이 많아야 NBA급 스타들을 두세 명 정도 보유했다면, 선수 전원이 NBA 슈퍼스타로 구성된 미국은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한 '차륜전'으로 상대를 경기 내내 괴롭힐 수 있었다. 상대는 어느 정도 선전하더라도 결국 체력과 선수층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부산 KCC와 수원 KT의 챔피언결정전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득점왕 패리스 배스와 국가대표 가드 허훈을 보유한 KT의 강력한 '원투펀치'는, 파괴력에서는 어느 팀을 상대로도 꿀릴 것이 없다. 하지만 하필 상대인 KCC가 그 원투펀치마저도 뛰어넘는 압도적인 물량공세가 가능한 '슈퍼팀'이라는게 KT로서는 괴롭다.
 
KCC가 챔피언결정전 4차전까지 3승 1패로 앞서며 대망의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 4차전에서 KCC는 KT에 96-90으로 승리를 거뒀다.
 
KCC는 1차전 승리(90-73) 이후 2차전(97-101)을 내주며 1승 1패로 맞선 상황에서 홈인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 2연전에서 3차전(92-89)과 4차전을 내리 제압하며 13년만의 우승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역대 챔피언결정전 중 3승 1패 상황은 총 10차례가 있었고, 리드한 팀이 모두 이변없이 100%의 확률로 우승을 차지한바 있다.
 
KCC는 정규리그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플레이오프 들어 6강에서 서울 SK(3승), 4강에서는 1위 원주 DB(3승 1패)를 연이어 업셋하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정규리그에서 주축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부상에 시달리느라 베스트 전력을 제대로 가동할 기회가 적었지만,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부상선수들이 모두 복귀하면서 완전체 전력을 갖추게 되자 전혀 다른 팀이 됐다는 평가다. 전문가들도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정규리그 순위에서 앞선 KT(3위)보다 대부분이 KCC의 압도적인 우세를 예상했을 정도다.
 
양팀의 챔피언결정전은 KCC의 '물량농구'에 KT가' 몰빵농구'로 맞서는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라건아, 허웅, 송교창, 최준용, 이승현, 알리제 드숀 존슨 등 멤버 대부분이 스타급 선수들로 구성된 KCC를 상대로, KT는 주포 배스와 허훈에게 공격권을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배스는 평균 27점, 10.8리바운드를 허훈은 평균 26점에 6.3어시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다. KT가 이번 챔프전에서 기록c중인 88.3점c중 두 선수가 평균 53점을 합작하며 팀 공격의 전체 60%을 책임질만큼 엄청난 활약이다.

KT 원투펀치의 고군분투는 가히 눈물겨울 정도다. 배스는 챔프전 4경기 연속 20-10(득점-리바운드)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승리한 2차전에서는 전반 무득점에 그치고도 후반에만 36점을 몰아넣는 괴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2차전부터 발동이 걸린 허훈은 4차전까지 3경기 연속 40분 풀타임 출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또한 3차전에서는 37점, 4차전에서는 33점을 쏟아부으며 국내 선수로는 챔프전 최초로 2경기 연속 30점+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KT가 6강부터 시작하여 4강에서 최종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오느라 KCC보다 2경기를 더 소화해야했던 체력부담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투혼이다. 친형이자 경쟁자인 허웅조차 "동생이지만 선수로서 리스펙트할 수밖에 없다"고 극찬할 정도다.
 
한편으로 이는 바꿔말하면 KCC가 집중견제에도 불구하고 KT의 원투펀치를 틀어막는 데는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플레이오프 들어 그야말로 압도적인 모습을 이어가던 KCC는 챔피언결정전에서는 KT를 상대로 다소 고전하고 있다.

1차전에서만 17점 차이로 낙승을 거뒀을뿐, 2, 3, 4차전은 모두 막판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이었다. KT의 예상밖 선전에 힘입어 챔피언결정전도 흥행몰이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KCC의 우세를 뒤집기에는 2% 부족했다. KT와 다른 KCC의 결정적인 차이는, 고른 득점 분포와 로테이션이었다.

평균 20점을 넘긴 선수는 라건아(20.3점) 한명 뿐이지만, 허웅이 18.3점, 송교창이 11.8점, 알리제 존슨이 13점, 최준용이 12.8점으로 5명의 선수가 두 자릿수 득점을 넘길만큼 특정 선수에 대한 편중없이 고른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매경기 팀 내 득점리더가 바뀌고, 한 선수가 부진하면 다른 선수가 나서서 그 빈 자리를 메운다. 3차전에서 허웅이 26점을 터뜨리며 동생 허훈과의 쇼다운에서 판정승을 거뒀고, 4차전에서는 송교창(6점)이 주춤하자 그동안 부진하던 최준용이 나서서 24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승리의 선봉장이 된 것이 좋은 예다. KT로서는 한두명을 막아도 다른 선수가 터져버리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이는 체력전에 있어서도 KCC에게 갈수록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허훈과 배스가 사실상 매경기 30분에서 풀타임 가까운 시간을 소화해야하는 KT에 비하여, KCC 전창진 감독은 컨디션이 좋지않거나 지친 선수들은 빠르게 교체해주며 체력을 안배하는 '여유'로운 운용이 챔프전에서도 가능했다.

KCC에서는 챔프전에서 풀타임을 뛴 선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출장한 허웅이 평균 31분 50초 정도다. 노장 라건아도 존슨이 부상에서 복귀하여 10분에서 15분 정도를 소화해준 덕에 평균 30분 미만으로 출전시간을 줄어들면서 오히려 더욱 집중력있는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여기에 켈빈 에피스톨라, 이승현 등은 개인기록 욕심을 버리고 짧은 출전시간에도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궃은 일에서 헌신해주며 주전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두 슈퍼스타를 앞세워 끝까지 명승부를 이어가고 있는 KT의 투혼도 대단하지만, KCC는 다수의 스타 선수들이 오직 승리를 위하여 하나로 뭉쳤을 때 팀이 얼마나 강해질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고 할만하다.

두 팀은 오는 5일 수원으로 돌아가 5차전을 치른다. KCC는 이제 1승만 더 하면 대망의 '5위팀 사상 첫 우승'을 확정짓는다. 반면 KT는 17년 전 2006-2007시즌 챔프전에도 1승 3패로 몰렸다가 시리즈를 7차전까지 몰고갔던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데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챔피언결정전 부산KCC 수원KT 허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